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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park/News & Article

자연 속 휴양지 vs 도심 테마공원

자연 속 휴양지 vs 도심 테마공원
[08.12.05 한겨레21]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 위로 신나는 캐럴이 울려퍼진다. 루돌프가 끄는 사슴썰매를 탄 산타가 싱긋 웃는다.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다. 아이는 꿈과 동화를, 연인은 낭만을, 어른은 추억을 떠올린다. 이곳은 이미 크리스마스의 낭만과 즐거움에 차 있다.

365일 환상과 모험의 세계가 있는 곳, 바로 놀이공원이다. 그네를 타듯 아슬아슬하게 하늘을 오르내리는 바이킹,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후룸라이드, 동서양의 축제를 만끽할 수 있는 화려한 퍼레이드. 놀이공원의 맞수인 에버랜드와 롯데월드는 동화 같은 경쟁을 벌인다.



» 에버랜드와 롯데월드(왼쪽부터)



에버랜드의 시작은 ‘산지개발’이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70년대 초 국내외 임학·농학·축산 쪽 전문가들과 만나며 산지개발 계획을 구상한다. 이 회장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한국의 헐벗은 국토를 볼 때마다 대한민국 산야에 나무를 심어 녹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곤 했다.

산지개발 최종 후보지로 뽑힌 곳은 경기 용인, 경북 경주(현 보문단지 일대), 추풍령 고개, 문경새재(수안보온천 주변) 등 4개 지역이었다. 용인은 서울에 가까웠지만 땅이 척박해 나무를 심는 데 적합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모지가 ‘생산하는 땅’으로 변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야 했다. 용인이 최종 낙점됐다.

자연 농원·실내 공원으로 단장

산에는 밤·호두·살구·매실나무를 심었다. 척박한 땅에는 돼지를 사육했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인공 저수지도 만들었다. 돼지의 분뇨를 퇴비에 사용했고, 저수지에는 물고기를 길러 수익성을 높였다. 살구로 넥타를 만들었고, 돼지는 햄의 재료가 됐다.

황무지가 생동하는 생산의 땅으로 일궈지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다. 삼성 신입사원들도 골짜기에 친 천막을 숙소 삼아 나무를 심었다. 71년 시작된 자연농원 공사는 6년의 시간이 걸린다. 76년 4월 에버랜드는 자연농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818달러였다.

롯데월드의 시작은 ‘일요일에 쉴 공간’이었다. 80년대 초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우리나라는 일요일이면 쉴 수 있는 적합한 공간이 없다.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설은 무엇일까”라며 롯데월드 구상을 싹틔운다. 마침 정부가 롯데에 서울 잠실 일대 땅 매입을 의뢰한다. 애초 이 땅은 율산이 서울시한테 사들였으나, 율산이 해체된 뒤 한양그룹으로 넘어갔다. 한양이 다시 부도 위기에 처하자 땅이 나왔다.

신 회장은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놀이공원 사업을 검토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당시 프로젝트팀은 이 일대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주변 시설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황무지나 다름없어 사업이 시기적으로 이르다는 결론을 냈다. 결정적으로 겨울철 온도가 1월 평균 -7.4℃ 이하로 떨어져 사업성과가 불투명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계획은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며 특유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프로젝트는 다시 검토됐다.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추위 대책이었다. 여러 방안을 검토하던 중 시설을 실내에 건립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아이디어는 곧바로 채택됐다.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총 건축면적 11만7015㎡, 높이 56m의 세계 최대 실내 놀이공원으로 태어난다. 당연히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석촌호수에는 매직아일랜드라는 인공섬도 만들었다. 당시 석촌호수 주변엔 포장마차가 우후죽순 들어서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오염물질이 유입돼 수질은 말이 아니었다. 매직아일랜드를 만들 당시, 12t 트럭 6900대 분량의 바닥 오물을 거둬냈다. 89년 7월 롯데월드도 문을 연다.

사파리월드와 신드바드의 모험

‘언제나 즐거운 마음의 고향’을 내건 에버랜드. 개장 당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탄 건 사파리월드였다. 76년 사자 사파리로 출발해 92년엔 사자와 호랑이를 합사했다. 5천 평 공간에서 벌어지는 맹수들의 권력다툼과 사랑과 질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에버랜드의 강점은 동물원이 있다는 것이다. 94년 9월 한-중 수교를 기념해 중국에서 들어온 판다 곰 ‘리리’와 ‘밍밍’은 에버랜드를 대표하는 귀염둥이가 됐다. 정순지 에버랜드 주임은 “99년에는 홈런왕 ‘라이언킹’ 이승엽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기념하기 위해, 그해 6월에 태어난 아기 사자에 이 선수의 이름을 따 ‘여비’란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여비라는 녀석은 자란 뒤 사파리에서 ‘무림의 고수’가 됐다.

하지만 동물원과 단순 놀이시설은 지루해지기 쉽다. 어린이대공원이 그랬다. 에버랜드는 85년 장미축제 야간 개장을 내놓는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이미지에 취해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음은 물론이다. 김인철 에버랜드 과장은 “장미 축제의 성공으로 92년 튤립, 93년 국화, 94년 백합 등 사계절 꽃 축제를 선보여 큰 인기를 모았다”고 말했다.

놀이공원에서 가장 잘 팔린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70년대 에버랜드의 인기 메뉴는 삼겹살과 김치찌개였다. 80년대엔 맛바·셔벗·솜사탕, 90년대엔 햄버거·츄러스, 2000년대에 들어선 피자·스테이크가 인기 메뉴였다. 70~80년대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 아저씨들은 어디로 갔을까? 디카(디지털 카메라)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오면서 최근에는 보기 힘들어졌다.

‘도심 속 또 하나의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건 롯데월드는 곧바로 연인들의 명소가 됐다. 두둥실 하늘에 올라 70m 상공에서 시속 100km로 2초 만에 아래로 떨어져 짜릿한 스릴을 주는 ‘자이로드롭’, 보트를 타고 깜깜한 지하 동굴 수로를 따라가다 연인과 살짝 키스할 수도 있는 ‘신드바드의 모험’은 젊은층에게 사랑을 받았다.

롯데월드는 개장 때부터 화려한 축제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대형 거리 퍼레이드와 환상적인 분위기의 쇼가 이어졌다. 롯데월드 전체에 울려퍼지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화려한 의상을 입은 수백 명의 연기자들이 퍼레이드를 펼쳤다. 산타 복장의 밴드가 퍼레이드를 이끌며 루돌프가 끄는 썰매, 춤추는 크리스마스트리, 요정과 눈의 여왕 등이 스치며 지나간다. 백설 공주, 헨젤과 그레텔, 오즈의 마법사, 아기돼지 삼형제, 알라딘, 피터팬, 엄지공주 등 동화 주인공들은 동화와 현실의 경계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회전목마는 아이와 연인에게 인기를 모았다. SBS 인기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촬영됐던 무대로 극중 권상우와 최지우의 자리는 한때 연인들이 서로 타려 하는 인기 좌석이었다.

에버랜드의 위기는 장미가 시들해지면서 찾아왔다. 90년대 후반 들어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꽃을 주제로 한 축제를 선보인다. 에버랜드만의 차별화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여기에 롯데월드라는 경쟁자도 있었다. 지하철 2호선이라는 접근성과 날씨에 상관없이 갈 수 있는 장점을 내세우며 에버랜드에 도전장을 냈다.

에버랜드는 ‘썸머 스플래시’ ‘스노우 페스티발’ 등 메머드급 신규 축제를 선보인다. 2005년엔 세계테마파크협회가 수여하는 퍼레이드 대상도 받는다. 관람객에겐 감성 서비스로 다가간다. 두 손을 앙증맞게 흔드는 핸드롤링은 손님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울 강남 나이트클럽의 유명 디스크자키(DJ)를 불러 서비스 교육을 받기도 했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불러내라

롯데월드는 2006년이 위기였다. 그해 롯데월드 직원이 놀이기구를 타다가 추락 사고를 당한다. 롯데월드는 사과하는 뜻에서 시민들을 무료로 입장시켰지만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 35명이 다치는 또 다른 사고를 낳았다.

롯데월드는 지난해 6개월 동안 문을 닫고 리뉴얼에 들어간다. 650억원, 10만 명을 동원한 초대형 공사를 벌인다. 남기성 롯데월드 팀장은 “천장을 첨단소재 알루미늄판으로 전면 교체해 소음을 줄이고 울림 현상도 저하시켰다. 안정성도 더 강화했다. 독일의 종합안정 승인기관인 TUV를 통해 놀이시설 운행과 관련한 1천여 안전항목을 테스트받았다”고 강조했다.

2006년 창립 30년을 맞은 에버랜드는 자연과 동물원을 콘텐츠로 ‘가족과 함께하는 자연 속 리조트’를 꿈꾼다. 송광섭 에버랜드 상무는 “365가지의 다양한 테마가 있는 리조트, 3대가 함께할 수 있는 대자연 속 테마 리조트로 발돋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 창립 20년을 맞는 롯데월드는 ‘도심 속 테마파크’를 추구한다. 김승환 롯데월드 상무는 “놀이공원과 더불어 아이스링크, 호텔 등 한 건물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도시 속 또 하나의 도시’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놀이공원은 또 다른 강력한 도전자와 맞붙어야 할 것 같다. ‘나이키의 경쟁 상대는 닌텐도’라는 비유가 가장 적절하다. 나이키의 주 타깃이 청소년인데, 이들이 닌텐도 게임에 몰두하게 되면 운동 시간이 줄어 나이키 매출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게임에 몰두해 있는 요즘 아이들을 놀이공원으로 불러내려면 좀더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로 먼저 고객에게 다가가야 한다.


놀이공원 변천사

삼겹살에 술 한잔 70년대 추억

1960년대만 해도 마땅한 놀이시설이 없었다. 간혹 스프링 말이 주르르 매달린 리어카가 동네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늘어졌다. 스프링 말은 아이들의 ‘로망’이었다. 스프링 말이 있는 집 아이들은 오락실집 아이만큼이나 부러움을 샀다.

74년 5월5일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다. 첫날 30만의 인파가 붐볐다. 76년엔 에버랜드도 문을 열었다. 어린이대공원은 봄이 되면 벚꽃놀이로 인기를 모았다. 어린이날에 서울시민들이 아이들과 함께 가는 대표적인 놀이시설로 자리 잡았다. 70년대엔 놀이공원이 ‘가족동산’ ‘유원지’ ‘위락시설’ 등으로 불렸다.

당시 놀이공원에는 식사를 할 수 있는 도구와 식재료를 직접 갖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코올을 넣어 펌프질을 했던 버너를 많이 썼다. 주된 메뉴는 김치찌개와 삼겹살이었다. 그러다 보니 화재가 많이 나 불 끄러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당시에도 술을 판매했는데, 지금처럼 맥주와 포도주가 아닌 막걸리가 인기 주류였다.

에버랜드가 문을 열 때 인기를 모았던 것은 사파리월드와 빙글빙글 돌아가는 데이트컵이었다. 80년대엔 겨울철 놀이문화의 대명사가 된 눈썰매장, 90년대에 워터파크 개념을 도입한 캐리비안 베이로 놀이공원은 변화·발전했다. 지금까지 에버랜드를 찾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사파리월드, 독수리요새, 아마존 익스프레스 차례였다. 롯데월드의 경우, 신드바드의 모험, 자이로드롭, 아틀란티스 차례였다.